새벽의 도로 위, 나와 테슬라만이 깨어 있을 때

 

가끔 잠이 오지 않는 새벽이 있다. 몸은 피곤한데 마음은 조용하지 못한 날. 그런 날엔 아무 말 없이 주차장으로 내려간다. 적막한 아파트 단지, 가로등이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는 새벽 공기 속을 걷다 보면, 말없이 서 있는 테슬라가 눈에 들어온다.
이 차는, 내가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나를 알아보는 사람 같다.

브레이크를 밟는 순간 차가 깨어난다. 아무런 소리 없이 조용히. 시동이란 말이 무색하게, 그저 조용히 켜진다. 손가락으로 화면을 몇 번 조작하고, 조심스레 기어를 내리면 차는 미끄러지듯 앞으로 나아간다. 새벽 3시의 도심은 마치 세상이 멈춘 듯 고요하다. 사람도, 소리도, 걱정도 없는 시간.
그 순간부터, 나는 나만의 드라이브를 시작한다.

테슬라는 그런 시간에 가장 빛난다. 굳이 속도를 내지 않아도, 이 차의 존재감은 흐릿한 도시의 불빛 속에서도 선명하다. 조용한 모터음, 부드러운 가속감, 귓가에 흐르는 음악. 모든 게 어울린다. 운전이라는 행위가 이렇게 감각적인 것이었나 싶을 정도로, 손끝과 발끝이 예민하게 차와 반응한다.
눈앞에 펼쳐진 도로가 꼭 한 편의 장면 같다. 영화도, 드라마도 아닌.
그냥, 나의 새벽.

운전하면서 많은 생각을 한다. 오늘 내가 했던 말, 하지 말았어야 할 말, 미처 전하지 못한 말. 말은 안 했지만 느껴졌던 무언가들.
조용히 흘러가는 차 안에서 그런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정리된다. 어느 방향으로 핸들을 꺾고, 어느 타이밍에 브레이크를 밟을지에만 집중하다 보면 마음속의 불필요한 생각들도 정리된다. 테슬라는 이런 감정의 여백을 참 잘 만들어주는 차다.
거기까지 같이 가줄 사람처럼, 말없이 옆자리에 앉아준다.

가끔은 한강을 향한다. 새벽의 강은 낮보다 훨씬 묵직하다. 물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뭔가 흐르고 있다는 느낌은 확실하다. 차를 멈추고, 창문을 살짝 내리고, 아직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신다. 히터는 은은하게 켜져 있고, 조수석 시트엔 아무도 없지만 그 자리가 꼭 채워진 듯한 기분이 든다.
이런 순간들이 내가 테슬라를 좋아하는 이유다. 조용하지만 절대 비어있지 않다.

예전에는 드라이브가 하나의 ‘이벤트’였다. 기분 전환을 위해,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혹은 특별한 날을 위해 차를 탔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 차를 타는 순간부터 일상은 드라이브가 된다.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목적지가 없어도 괜찮다. 그저 조용히, 자신을 위한 시간을 만들 수 있다는 것. 그게 테슬라가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이다.

돌아오는 길엔 일부러 라디오를 끈다. 아무 소리도 없이, 차와 나만 도로 위를 흐른다. 거리의 불빛이 전조등에 부딪혀 길게 퍼지고, 반짝이는 간판들이 실내로 스며든다. 도로 위의 그림자가 흔들리고, 뒷유리에 반사된 내 모습이 잠시 멈췄다 사라진다.
테슬라의 유리창은 단순히 밖을 보여주는 도구가 아니다.
그건 어쩌면 나를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집으로 돌아와 차를 세운다. 시동을 끌 필요도 없다. 그냥 기어를 ‘P’로 놓고, 문을 닫는다. 이 차는 내가 타고 있을 때도, 타고 있지 않을 때도 내 마음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새벽 드라이브는 끝났지만, 그 고요한 감정은 한동안 내 안에 머물 것이다.
테슬라는 그런 감정을 만들어주는 차다.
오늘도 그 고요함 속에서, 나는 나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