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차 안에서 보내는 오후

 

오늘은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굵지 않지만 멈추지 않는, 적당히 조용하고 은근한 비. 이런 날엔 어딜 나가기보다는 그냥 차 안에 머무는 시간이 더 좋다. 테슬라 모델 Y 퍼포먼스의 조용한 실내는 빗소리를 더 선명하게 들려주는 공간이 된다.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비 오는 날 운전은 늘 번거롭고 긴장되는 일이었고, 차 안은 잠시 머물다 가는 장소일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차 안에서 느긋하게 앉아 빗소리를 듣는 이 시간이 참 좋다.

차를 타고 한적한 공원 근처로 갔다. 사람들이 거의 없는 평일 오후, 나무들은 젖어 있고, 벤치엔 물방울이 흐르고 있었다. 차를 멈추고, 시트를 뒤로 젖혔다. 센터 디스플레이에선 잔잔한 재즈가 흐르고, 와이퍼는 천천히 유리를 쓸고 있었다.
유리창을 타고 흐르는 물줄기는 작은 강처럼 갈라지고, 그 너머로 보이는 흐릿한 풍경은 수채화처럼 번져간다. 창밖을 바라보다가, 문득 '지금 기억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엔 비가 오면 불편함이 먼저 떠올랐다. 우산, 젖은 바닥, 교통체증.
하지만 이 차를 타고부터는 비가 오는 날도 그 나름의 리듬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차 안에서 내리는 빗방울을 바라보는 건 일종의 명상 같고, 그 조용한 리듬에 몸을 맡기면 마음도 자연스럽게 잦아든다.
창문을 약간 내리면, 빗방울이 땅에 닿는 소리가 더 또렷해진다. 그런 소리는 사람을 아주 부드럽게 만든다.

차 안에서 뭔가를 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멍하게 있을 수 있는 시간. 바깥 풍경과 빗소리를 동시에 느끼는 이 감각이 주는 위로는, 생각보다 훨씬 크다.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채워지는 것들이 있다.
이 차는 그런 ‘비워짐의 순간’을 허락해 주는 공간이다.

운전이라는 건 원래 목적지를 향한 움직임인데, 이 차는 움직이지 않을 때도 의미를 만들어준다. 멈춰 있는 동안 더 많은 감정을 느끼고, 더 많은 생각을 정리하게 되는 건, 이 차가 주는 조용한 배려 덕분이다.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고, 그저 곁에 있는 것.
그게 이 차의 가장 큰 매력일지도 모른다.

비가 오는 날이면 종종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예전엔 그와 함께 이런 날이면 카페를 가거나, 집 근처를 산책했다. 지금은 혼자지만, 어쩐지 그때보다 마음이 더 평온하다. 그 사람이 떠난 자리를 이 차가 조용히 채워주는 것 같다.
슬픔은 줄어들지 않았지만, 다듬어졌고, 둥글어졌다. 감정이란 결국 그렇게 정리되는 건가 보다. 조용한 차 안, 흐르는 빗소리, 그리고 나.
그 세 개가 나를 오늘도 버티게 해준다.

저녁이 되기 전, 다시 집으로 향했다. 거리는 여전히 축축했고, 라이트는 물비늘 사이로 번져 있었다.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빨간 불빛이 땅에 물들고, 그 사이사이로 차가 지나간다. 라디오를 켜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저 테슬라가 들려주는 전기 모터의 미세한 소음과, 차체에 부딪히는 비의 박자가 충분했다.

도착해서 차를 세우고, 잠시 그대로 앉아 있었다. 차 안이 어두워지고, 실내조명이 천천히 켜진다. 따뜻한 조명과 빗소리가 만나 이 작은 공간은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방이 되었다.
비 오는 날, 나는 차 안에서 더 나를 많이 느낀다.
그리고 그 시간은, 언제나 테슬라가 곁에 있어 가능했다.